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바 미사일 위기 (문단 편집) === 미사일 철수 === [[파일:cubacrisis.gif]] > "이 녀석(핵전쟁)을 가둡시다." 결국 핵전력은 물론 봉쇄를 돌파할 만한 재래식 해상전력조차 없었고 끝까지 가면 [[국가 멸망]]을 피할 수 없었던 소련의 현실로 인해 흐루쇼프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. 흐루쇼프는 케네디에게 [[튀르키예]]에 배치한 미국의 중거리 탄도탄의 철수를 조건으로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. 그러나 미국은 이것이 공식 루트가 아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[[언론플레이]]로 의심했고 동맹국 튀르키예의 안전보장 문제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그 제안을 거부했다. 그러나 미국의 의심과는 달리 흐루쇼프의 제안은 진짜였다. 라디오 방송으로 제안을 한 이유는 양국 간에 [[핫라인]]이 없어서 전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암호화하여 보내고 다시 이를 해독하고 또 통보하는 시간 등을 합치면 거의 하루가 걸린다.[* 사실 이것도 엄청나게 서둘러서 한 거다. 미소 양측 모두 상황의 긴박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 외교관 및 해독관들은 보통 혼자서 진행하던 작업을 여럿이 달려들어서 문장 단위로 나누어 해독한 후 합치는 식으로 작업시간을 축소시켰다.] 게다가 그 전보가 진짜로 상대국의 국가원수에게서 온 건지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.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흐루쇼프는 2번 전보를 보냈는데 미국은 이게 정말 흐루쇼프가 보낸 건지 고민했다.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서 양국 수뇌간 의사교류에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문제가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 바로 라디오였다. 흐루쇼프는 10월 28일을 기하여 선단에 회항 명령을 내리고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. 그렇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종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